인간의 도구는 근육을 대신하여 힘을 만들어 내는 수준을 지나 이제 기억하고 사고하는 것까지 대신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학습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은 두뇌의 역할이다. 그런데 어떤 도구가 그 일을 마치 내가 스스로 하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대신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내 몸 바깥에 놓인 두뇌, 즉 외뇌 또는 엑소브레인(Exobrain)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외뇌(Exobrain)의 이용이 보편화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기능적 측면에서 가장 완벽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도구를 이용해서 타고난 육체적 약점을 극복해 왔다. 그래서 털이나 두터운 지방층의 보호가 없어도 북극곰과 같은 지역에서 살 수 있고, 큰 송곳니와 발톱이 없어도 먹이 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떤 동물보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멀리 볼 수 있고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도구란 것은 옷이나 삽, 망치, 쟁기와 같이 인체 자체의 연약함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 있는가 하면 지렛대나 도르레, 엔진, 모터와 같이 인간이 근육을 움직여 만들어 내는 힘을 보조하기 위한 도구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책이나 주산, 컴퓨터와 같이 인간을 대신하여 기억하고 계산하기 위한 도구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육체의 보강, 노동력의 절약 또는 대체, 두뇌 활동의 보조라는 세 가지 유형의 도구를 이용하여 더 행복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만들어 왔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이런 노력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추세를 보자면, 앞의 두 유형의 도구는 그 발전 속도가 다소 주춤거리고 있는 반면 마지막 유형의 도구는 이제야 비로소 본격적인 발전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진보의 조짐
인간 두뇌의 보조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하나씩 따져보면 그다지 신기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다. 두뇌는 학습, 기억, 판단, 감정, 인지 등 상당히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도구의 도움을 받은 것이 기억이다. 사실 인간의 역사 그 자체가 사건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극히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런 유형의 두뇌 보조 도구가 가진 가치의 본질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 나무 조각이나 가죽에 붓이나 펜으로 쓴 글이건 종이에 최신 기계로 인쇄한 글이건 HTML로 짜여진 웹 페이지이건 상관없이 모두 어떤 물체에 시각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대신하게 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기록 매체일 뿐이다. 또한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건, 인간 기억의 기록과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그 기능 또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나마 기억을 돕기 위한 도구는 여러가지 형태로 고안되어 이용되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뇌 기능들의 경우에는 적절한 도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극히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기억을 넘어 인지, 판단과 같은 지적 활동 영역에서도 두뇌를 보조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바로 컴퓨터이다.
컴퓨터를 이용하게 되자 정보처리, 저장, 연산 등에서 인간의 능력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손으로는 도저히 결과를 낼 수 없었던 많은 연구들이 컴퓨터의 도움으로 간단히 해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컴퓨터가 최종적이고 완성된 도구라고 할 수는 없다. 컴퓨터는 여전히 어렵고, 불편하며, 이동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은 도구이다. 뿐만 아니라 학습, 인지, 판단과 같은 영역에서 여전히 상당 부분은 사람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 컴퓨터를 뛰어 넘는 본격적인 인간 두뇌 보조 기기의 등장을 가능하게 할 몇 가지의 기술적 진보의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이동성의 문제, 상황 인지의 문제 등에 대한 해결이 이루어지고 있고, 웹의 발달과 함께 정보 용량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그 밖에 빅데이터나 증강현실 등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많은 기술들이 좀 더 유용한 정보통신 기기와 서비스 즉, 두뇌 보조 도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인지와 판단을 대신하는 도구
컴퓨터가 막강한 연산 능력을 기반으로 복잡한 업무를 대신해 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특히 사람의 개성과 의사결정 시점의 상황이 반영된 판단의 문제,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메뉴로는 뭐가 좋을까, 재미있는 영화가 뭘까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컴퓨터는 기본적인 정보 제공을 넘어서는 일을 거의 하지 못한다. 왜냐면 이용자 고유의 성향과 현재 이용자가 처한 상황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용자의 현재 상황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자동적으로 수집 가능하게 되었다. 어디에 있는지, 바깥의 날씨가 어떤지, 도로가 막히는지 아닌지, 친구와 함께 있는지 아닌지, 다음 일정이 몇 시에 시작되는지 등 매우 상세한 상황 정보가 파악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빅데이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용자의 개성을 파악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빅데이터는 그리 길지 않은 정보통신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등장한 개념 중의 하나이고 따라서 아직 그 개념이나 활용 영역에 대한 정의가 명쾌하게 내려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논의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면 꽤 근사한 정도로 이용자의 개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물론 이런 일을 하기에는 스마트폰이나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의 발달로 이런 문제는 해결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없었던, 수퍼 컴퓨터로나 가능했던 정도의 막강한 연산 능력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류 전체의 두뇌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연산 능력을 한 개인이 자신의 손 끝에서 구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컴퓨터 성능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현재의 상황을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되고, 고유의 개성과 취향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나에게 딱 맞추어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존재가 나를 대신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크게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적절한 인터페이스를 갖추게 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것이 지금 어느 정도 구현된 것 중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사례가 애플이나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선보이고 있는 음성인식 기반의 개인 비서 서비스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해보면 아직 음성 인식 수준도 낮고, 이용자 개인의 성향을 반영하는 부분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때로는 매우 적절한 수준에서 현재의 시간과 장소를 고려한 응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배고파라는 말을 하면 주변의 식당을 검색해서 알려주는 수준의 반응을 보인다. 만약 좀 더 개인화 수준이 높아진다면 이런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훨씬 능동적인 반응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좋아할 식당을 미리 찾아낸 다음 이용자가 배가 고파질 시간이 되면 그 식당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라고 먼저 제안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일상 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인지와 판단을 대신해줄 편리한 도구를 드디어 갖게 된 셈이다.
학습과 기억을 대신하는 도구
그런데, 이렇게 이용자 고유의 개성을 파악하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대신하여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요한 정보 부족으로 최선의 대안을 설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의 예에서 이용자가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그래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단 선택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그것을 이용자의 개성과 현재의 상황 관점에서 비교하고 평가해서 최적의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판단의 기준과 논리는 이용자 고유의 개성과 주어진 상황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판단하기 위한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원래 그 부분은 학습과 기억으로 해결해 온 부분이었다. 고추는 맵다라는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면 고추가 들어간 요리를 찾으면 매운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고추가 맵다라는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직접 겪어서 학습을 하였건, 남이 말해 주어서 간접적으로 학습을 하였건 어떤 방법을 통해서건 배워야 알게 된다. 말하자면, 어떤 정보이건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학습해서 그것을 필요할 때 기억해 내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학습해서 기억해 낼 수 있는 정보의 크기는 터무니 없이 작다는 점이다. 물론 기억 용량의 문제는 단순히 수첩만 이용해도 많이 해결된다. 하지만 학습이라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그런데, 학습이란 것이 결국 나중에 기억하기 위한 예비 단계로서 의미있는 것이라면 아예 학습하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이 있다면 매우 다양한 정보를 즉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 자체가 어느 정도의 정보는 직접 저장하고 있을 수 있고, 혹시 스마트폰에 저장되지 않은 정보가 있다해도 즉시 웹에 접속하여 검색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 학습하지 않았지만 필요 정보를 기억해 낸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실 웹이란 것은 정보통신의 짧은 역사 중에서도 후반기에 등장한, 역사적으로는 매우 일천한 신기술이다. 그런데 일단 웹이 만들어지자 단순히 디지털화된 정보를 손쉽게 교환한다는 것 이상으로 인간의 학습과 기억 능력을 비약적으로 확장시켰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첫째, 굳이 스스로 학습하지 않아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둘째, 그 공유된 기억의 양은 사실상 무한하다.
웹 이전의 모든 정보 저장 매체들은, 예컨대 책이나 노트나 또는 심지어 컴퓨터까지도 모두 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내가 갖고 있어야만 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직접 정보를 학습해야만 했다. 하지만 웹 세상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웹 세계 어딘가에 공개된 정보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 정보를 손쉽게, 마치 내 손에 쥐어진 것인양 이용할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수 없이 많은 글을 웹에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공개된 정보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 백 명의 사람이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면 한 사람이 백가지 정보를 학습한 것과 같은 기억 효과가 나올 것이다. 하물며 같은 언어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접속된 웹이 가져올 학습 대체 효과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살아도 1만 권을 넘게 읽기 힘들다. 한 명의 사람이 도저히 섭렵할 수 없는 수준인 수 천 만 권에 달하는 미국 의회 도서관의 모든 인쇄물의 정보를 다 모으면 대략 1만 기가 바이트 수준이라고 한다1. 하지만 웹에 널려 있는 정보의 총량은 그것의 2억 배 정도라고 한다2. 웹은 전 인류가 평생을 걸쳐 읽어도 다 읽을 수 없는 정보를 한 개인이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셈이다.
마치 몸의 일부처럼 이용되는 도구
나를 대신하여 학습하고 인지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대단하고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언제 어디서나 이용하지 못한다면 곤란하다. 컴퓨터는 바로 이 점에서 문제가 많았다. 무겁고 갖고 다니기에는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여 해결한 것이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항상 이용자의 손에 들려있거나 최소한 손이 닿는 곳에 놓여있다는 점, 그리고 항상 켜져 있다는 점, 나아가 일반적인 컴퓨터가 갖지 못한 다양한 센서를 통해 이용자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컴퓨터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스마트폰 역시 수동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아직 개선의 여지는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려면 화면을 열고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직접 검색해서 이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 이용하기 위해서는 손 하나 또는 두 손 모두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 또한 매우 불편한 일이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시도가 입는 컴퓨터, 웨어러블 컴퓨터에 대한 연구이다.
현 시점에서 웨어러블로 상용화된 제품은 아직 없다. 많은 기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시제품이 만들어진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상용화되기 어려운 형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구글이 매우 인상적인 제품 컨셉을 발표한 바 있다. 그것은 구글 글라스라고 불리는 제품인데 안경 형태의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구글 글라스는 단지 스마트폰의 기능을 좀 더 편하게 이용하도록 해 주는 정도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안경을 쓰는 것으로 스마트폰의 이용이 시작되고 안경을 벗을 때까지 계속 그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고 언제나 어디서나 웹에 접속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보고 있는 화면이 바로 정보 조회 화면이고 말하는 것이 검색 명령이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보면 구글 글라스는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작동하는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다.
엑소브레인(Exobrain)의 시대
지금까지 말한 모든 발전이 이루어진 상황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굳이 자기 머리 속에 담아둘 필요가 없게 된다. 새롭게 창조된 지식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정보와 지식이라면 분명 웹의 어딘가에는 이미 그것이 공개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웨어러블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웹에 연결되어 있고 항상 웹을 이용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할 경우 그 즉시 필요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현재 상황에 딱 적합한 정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굳이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가상의 비서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그저 잘 정제된 정보를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미래의 정보통신 기기와 서비스는 나를 대신하여 학습하고, 기억할 것이며, 최선의 조건에 맞추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절히 가공하고 선별해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학습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은 두뇌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시간으로 외부에서 진행해 준다면, 그래서 마치 내가 스스로 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을 내 몸 바깥에 놓인 두뇌, 즉 외뇌 또는 엑소브레인(Exobrain)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외뇌의 시대가 열리면 우리의 지적 활동 중에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재미있는 예를 들어 말해보자. 최근 LG전자가 발표한 Q트렌스레이트의 경우 카메라에 잡힌 외국어를 즉시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여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구글 글라스, 그리고 증강현실 기술과 결합시켜 보자.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외국어로 된 간판이나 책이나 신문을 볼 때,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그 간판이나 책이나 신문이 한국어로 쓰여진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음성 인식 번역기가 웨어러블과 결합될 경우 내가 웅얼웅얼 한 말을 알아듣고 외국어로 번역해서 상대에게 들려줄 수 있고 상대가 한 외국어를 알아듣고 내게 번역하여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단히 여행이나 다니고 할 목적이라면 굳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 상당 부분은 아마 백과사전을 검색하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굳이 외울 필요가 있을까? 그런 정도의 두뇌 활동은 그냥 외뇌에 맡겨두고 사람들은 보다 창조적이고 감성적인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실 지금도 이미 외뇌의 시대는 일부 열려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많은 전화번호를 다 외우지 않고 스마트폰의 전화번호부 기능에 기억을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많은 운전자들은 처음 가 본 길임에도 불구하고 네비게이션에 인지, 판단, 기억을 의존해서 마치 잘 아는 길처럼 아주 능숙하게 목적지를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산업적 시사점
다른 모든 도구와 마찬가지로 외뇌 또한 당연히 보편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산업적으로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고도의 네트워크, 클라우드 및 인공 지능 서비스, 웨어러블 스마트폰 등 외뇌의 구현에 기여하는 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며 이것은 정보통신 산업의 미래 모습이 될 것이다.
둘째, 외뇌가 보편화된 세상이 가지게 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응하여 기존의 일부 산업이 쇠퇴하기도 하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기도 할 것이다. 또는 동일 산업 내에서도 기능과 가치의 성격에 따라 성쇠가 갈릴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 의미의 암기 위주 교육 시장은 쇠퇴할 것이지만 창조적, 예술적 활동을 강화 시켜주는 교육 시장은 더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뇌 활동을 유흥으로 즐기는 산업도 흥하게 될 것이다. 동시 통역과 같이 기계로 대체 가능한 직종은 위기 상황에 놓이겠지만 전문 번역가들은 클라우드와 웹 기억에 활용될 원본 자료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트렌드의 연장선을 추정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외뇌외 시대는 이미 결정된 미래라고 보인다. 문제는 외뇌 역시 도구일 뿐이고 도구의 가치는 쓰는 사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외뇌의 시대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서기만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