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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트랜드

녹색산업도 소프트한 가치 생각할 때


정부의 지원이 줄고 제품이 대중화되는 미래에는 녹색산업에서도 실적과 경험에서 나오는 혁신 능력, 녹색 가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 운영관리 서비스 및 솔루션 제공 능력, 지식정보 활용 및 융합기술 개발 능력 등 소프트한 역량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애플 아이폰의 성공 신화를 보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플은 PC및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일 뿐, 노키아만큼 휴대폰을 잘 만들지 못했고 이동통신사처럼 자체 통신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 애플은 무형의 요소인 ‘애플’ 브랜드에 열광하는 고객층, 감성적인 터치 및 디자인 설계능력, 앱스토어의 기초가 된 아이팟-아이튠즈플랫폼 등을 결합시켜 휴대폰의 새지평을 개척한 아이폰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제품의 물리적 성능이나 양적 공급 능력과 같은 ‘하드’한 가치뿐만 아니라 서비스, 디자인, 브랜드 등 무형의 ‘소프트’한 가치가 중요해 지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 발전으로 지식정보 사회가 도래하고 제조업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소프트화’는 사업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녹색산업은 어떠할까? 태양광, 풍력, 전기자동차, 스마트 그리드, 그린빌딩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 신생산업도 소프트화 바람에 동참할 것인가? 지금까지 녹색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초창기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기 위해 효율이 높고 내구성이 강하며 저렴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줄고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까운 미래에도 계속 그러할까?

  • 기술 및 제품력 위주의 경쟁구도

    우선 현재 녹색산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민간기업의 참여가 늘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녹색산업은 규제 및 보조금 등의 정부정책에 좌우되는 산업이다.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대비 상대적으로 경제성을 가지게 되는 ‘그리드 패리티(GridParity)’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저렴한 풍력의 경우 원자력발전소에 비해 단위당 전력 생산비용이 2배 이상 비싼 상황이다( 참조). 전기자동차, LED 조명 등도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나 형광등에 비해 가격이 매우 높아 정부의 지원 없이는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다. 따라서 기업들은 제품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전까지, 정부가 정해놓은 규제 및 보조금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제품의 가격, 효율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원천 및 상용화 기술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한시라도 빨리 정부의 보호막을 벗고 자력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또한 현재 녹색산업 관련 제품은 성능이나 사용도가 기존 제품에 비해 떨어지거나, 사용하려면 소비자의 행동양식에 변화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녹색산업 관련 제품으로의 교체가 적지 않은 소비자 저항을 낳는다는 것이다. 운전자는 자동차 기름통에 휘발유를 넣는 대신 배터리에 전기를 충전해야 하고, LED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명기구도 함께 바꾸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료를 더 지불해야 하고, 그린빌딩을 건설하기 위해서도 높은 재료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 높은 초기비용을 정부가 보조하고 운영비용이 적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비용 회수기간이 길고 인식도 낮아 제품 확산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스마트화가 녹색기업의 미래 경쟁력 좌우

    이처럼 정부 정책에 휘둘리고 소비자들의 저항도 만만찮은 만큼, 녹색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원만한 비즈니스를 위해 고려할 사항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녹색산업이 성장할수록 정부지원이 줄어들고, 소비자 저항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품의 범용화로 가격 및 성능의 차이가 좁혀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조만간 무형의 소프트한 가치가 녹색산업에서도 중요해질 공산이 크다.

    녹색산업의 소프트화 방향은 기존의 여타 성숙 산업과는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 소프트화에 따라 하드웨어 회사에서서비스 및 솔루션 회사로 바뀐 IBM과 같은 급격한 체질 변화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섣불리 소프트한 가치에 치중하여 제품의 기술 및 성능을 소홀히 한다면, 자칫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 녹색산업의 소프트화에 앞서 현재의 제품력을 갈고 다듬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대규모 실적을 통한 사업 경험의 축적과 환경영향 평가를 고려한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다. 장기간의 운영 노하우를 통해 제품 단가를 낮추는데 노력하고, 환경영향 평가를 고려함으로써 친환경 이미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러한 굳건한 제품력을 기반으로 운영지원 서비스 및 솔루션, 지식정보 활용과 기술융합 같은 소프트한 가치들을 결합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향이다. 사용자 편의 및 신뢰를 높여주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미래 녹색산업의 변화에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1. 실적과 경험을 통한 사업혁신 능력

녹색산업은 신생산업이기 때문에, 운영 안정성을 담보하고 혁신의 밑거름이 되는 사업 경험 및 실적(reference)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태양전지나 전기자동차처럼 개발 된지 수십 년이 지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제품은 경제성을 갖추지 못해 도태되거나 제한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극히 최근에 들어서야 고효율, 친환경, 저탄소 분야의 관심증가와 기술발전으로 대규모 사용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설계대로 움직이는지,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지 등 제품 자체에 의구심이 들수 밖에 없다. 다른 산업의 경우 브랜드로 품질을 대신하겠지만, 초창기인 녹색산업에서는 사업 실적이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특히 태양광, 풍력, 그린빌딩 같이 대규모 시공사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사업 경험이 중요하다. 초기 건설 비용이 높고 한번 설치되 면몇 십 년간 운영해야 되기 때문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다른 곳에서 많이 사용한 제품을 신뢰하기 쉽다. 이러한 의미에서 2009년 퍼스트 솔라(First Solar)가 중국 내몽고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계약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까지 총 2GW의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는데 이는 현재 세계 최대 태양광 발전소로 꼽히는 스페인 Jumilla보다 약 100배나 큰 규모이다. 수많은 리스크 요인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발전 시설을 제조, 건설,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발전단가를 낮추고 다른 신규 프로젝트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이점이 퍼스트솔라가 계약을 추진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정부 및 민간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기업들의 참여가 줄을 잇는 것은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풍부한 사업 실적을 쌓아 후속 사업에 적극 활용하기 위함이다.


2. 녹색가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

다음으로 환경영향 평가를 고려한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다. 친환경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등 녹색산업이 추구하는 본래 가치에 좀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후원 속에 성장한 녹색산업은, 정부의 높은 실적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친환경 또는 녹색이라는 원래 취지와 배치되는 방식으로 강행되는 사례가 있었다.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따른 산림 훼손, 풍력 발전소 주변의 소음 공해, 전기자동차의 폐배터리 문제 같이 무늬만 녹색인 사례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품이 주변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감축량은 얼마나 되는지, 제품의 생산에서 소비, 재활용까지 친환경적으로 운영되는지 등 같은 친환경 제품이라 하더라도 보다 세밀한 환경평가가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환경영향 평가 및 친환경 인증제도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탄소배출권 시장의 개화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가가 활발한데, 개별 제품 수준의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에서 기업 단위의 배출량까지를 포괄하는 평가 및 인증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청정개발체제(CDM)와 같은 대규모 배출량 검사의 경우, 유엔기후변화협의회(UNFCCC)에 등록된 몇몇 기관에서 인증을 도맡고 있다. 포스트 교토 체제가 확립이 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가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린빌딩에서도 인증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GBC(Green Building Council)가 2002년 제정한 LEED(Leadership in Energyand Environmental Design) 뿐만 아니라 영국의 BREEAM(BRE Environment a lAssessment Methods), 일본의 CASBEE(Comprehensive Assessment System for Building Environmental Efficiency) 등 다른 국가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녹색산업 내의 ‘친환경 옥석 가르기’로서 환경평가와 인증시스템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3. 운영관리 서비스 및 솔루션 제공 능력

제품 판매 이후 품질을 보증하고 고객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운영관리 서비스 및 솔루션도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녹색산업은 어떻게 해야 대중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해 주로 고민해 왔다. 기존 조명 소켓을 바꾸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전구형 LED나 내연기관자동차의 급유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전기자동차의 급속 충전장치와 같이 많은 제품들이 녹색상품을 처음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데 주력해왔다. 상대적으로 운영, 품질, 수리 같은 사후 관리 및 유지 부분에 대해선 미흡하였다. 그러나 녹색산업의 제품이 전체 시장에서 ‘티핑 포인트’를 지나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경우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할 수 있다. 최근 사후 품질 관리의 미흡으로 대량의 리콜 사태에 직면한 도요타의 사례가 녹색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풍력발전 선두기업인 베스타스(Vestas)의 행보가 주목된다. 풍력발전은 불규칙한 풍향으로 기계장치가 마모하는 등 잔고장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유지보수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에 따라 베스타스는 풍력터빈 관리 매뉴얼을 작성하고 디자인, 설계, 건설, 유지보수까지 하나의 솔루션 형태로 제품을 제공하여 유럽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최근 계약한 180MW의 Robin Rigg,300MW의 Vattenfalll Thanet 프로젝트에서도 5년 동안의 운영 및 유지보수가 포함되어있다. 또한 풍력발전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규칙한 에너지 수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드시스템을 도입하고, 새로운 풍력 에너지 저장장치 개발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제 베스타스는 단순히 풍력발전기를 판매하는 기업이 아닌, 풍력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4. 지식정보 활용과 융합기술 개발 능력

태생적으로 ICT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마트 그리드, 그린 IT 등은 다른 녹색산업보다 지식정보의 활용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인터넷 및 유무선 통신을 활용한 소프트웨어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스마트폰, 태블릿 PC등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그리드의 경우 실시간으로 전력 사용 정보를 소비자와 전력회사에게 알려주는 스마트 미터(Smart meter) 정보의 활용이 늘 어 날 것 이 다 . 예 를 들 면 구 글 의 Powermeter, 마이크로소프트의 Hohm과 같은 애플리케이션과 연동이 가능하다. 이것들은 건물 환경 및 에너지 사용 이력 등을 분석하여 최적의 에너지 절감책을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에너지 사용정보가 많고 정확할수록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그린 IT의 가상화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여러 애플리케이션 등에도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 혁신적인 아이디어, 지식정보의 활용능력은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스마트 그리드, 그린 IT 이외의 다른 녹색산업에서는 융합기술이 부상할 전망이다. 태양열, 지열, 조력, 이산화탄소 포획 및 저장(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 등 여러 녹색기술 대안들이 개발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이산화탄소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를 묶거나, 여러 신재생에너지들을 함께 사용하는 등 녹색기술의 융합을 통한 혁신적인 제품이 필요한 상황이다. 운전 중에도 충전이 가능한 태양광 자동차, 전기자동차 충전을 위한 구글의 태양광 주차장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태양광 및 풍력의 남는 전기로 무공해 에너지인 수소를 생산하거나, 해수온도차발전 및 풍력 발전을 묶은 에너지 아일랜드 사례 같이 에너지 생태계의 관점에서도 신재생에너지 간 전환 및 교류는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출처 : LG경제연구원 성낙환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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